[조선데스크] DJ 정부의 ‘불편한 진실’
이진동 사회부 차장대우 jaydlee@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08.01.02 22:46 Url 복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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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동 사회부 차장대우 “무죄 판결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도 했지만, 유죄 결론을 유지하기로 했다.”
불법도청을 묵인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로 기소된 임동원, 신건 두 전직 국정원장에 대한 항소심 재판장 이재홍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가 지난해 12월 20일 유죄를 선고하면서 한 말이다. 상당히 고심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년을 끈 1·2심 재판에서 두 전직 국정원장은 시종일관 “부하직원들의 도청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도·감청 업무를 했던 8국(과학보안국) 국장 중 한 명이 “(도청 내용이 담긴) 통신첩보 보고서를 보면 정치인 등의 통화내용이 있는데, 원장님들이 그것(도청)을 몰랐다고 한다면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입니다”라고 진술했지만, 두 사람은 끝까지 부인했다.
신 전 원장은 법정에서 도청사건 재판을 ‘드레퓌스 사건’에 비유했다.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유태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간첩’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장교 드레퓌스에 비유, 자신이 억울한 ‘희생양’임을 부각하려 한 것이다. 양심과 역사의 진실을 상징하는 드레퓌스 사건까지 인용하고 나설 정도였으니 재판부의 유·무죄 판단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부장판사는 유죄 선고 뒤 “이번만큼 유·무죄를 고민한 적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2월 31일 특별사면 대상에 두 전직 국정원장을 포함시켰다. 두 사람은 같은 달 27일 대법원에 상고를 신청했다가 몇 시간 만에 철회, 형이 확정되도록 한 뒤 특별사면을 받았다.
‘혹시 무죄판결했어야 했던 건 아닐까’라는 찜찜함에서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이 부장판사는 두 사람에 대한 특별사면을 보면서 ‘유죄 선고’가 옳았음을 더욱 확신했을 것 같다. 두 사람이 정말 드레퓌스였다면, ‘사면’ 언질에 그처럼 섣불리 무죄 다툼을 포기하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특별사면의 정치적 해석에 초점이 맞춰져 두 사람에 대한 유죄가 최종 확정됐다는 의미는 가려진 측면이 있다. 다시 말해 김대중(DJ) 정부에서의 도청 행위에 대한 역사적 단죄가 종결된 것이다.
DJ는 도청사건 수사 때 “사실이 아닌 것을 억지로 만들어 내고 있다”고 했고, 최근까지도 “아무런 증거 없이 부하직원 몇 명의 말만 듣고 두 전직 원장을 구속했다”고 분개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고 인권대통령의 상징이다시피 한 DJ가 재임 시 국정원의 도청행위를 인정하기란 곤혹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국정원은 대통령의 지시·감독을 받는 대통령 기관이어서 DJ 정부의 도덕성에 치명타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과거 김영삼(YS) 정부에서의 도청보다는 DJ 정부에서 도청 행위만 부각되다 보니, 불편한 심기도 이만저만 아니었음 직하다. 그래서 DJ의 명예를 지키려 ‘의리’를 좇았던 두 전직 원장은 특별사면의 혜택을 입은 반면, 도청 사실을 시인해 ‘눈엣가시’였던 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은 복권에서 제외됐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두 사람에 대한 유죄 확정으로 DJ 정부에서 유력인사를 상대로 한 광범위한 도청 행위는 부인하기 힘든 역사적 사실이 됐다는 점이다. DJ에겐 분명 ‘불편한 역사적 진실’이다.
비록 국정원의 도청 행위를 몰랐다고 하더라도 뒤늦게나마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고 이제라도 국민 앞에 사과를 하는 게 역사에 남을 용기 있는 지도자 모습이 아닐까 싶다. 두 전직 원장에 대한 법적 사면이 역사적 사면까지 뜻하는 건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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