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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공군들을 위해 위문공연을 하는 북한 예술단원들
글 쓴 이 :  조화유 등록일 :  2008-03-24 16:54:51 |  조회 : 636 |  추천 : 77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공군들을 위해 위문공연을 하는 북한 예술단원들> 


   
김일성 남침을 소련과 함께 승낙해준 

 
중공군 개입이 "방어전쟁"이었다고?

  

강정구 주장은 가치중립적 교수 발언 아니다

 

 강정구씨가 또 이상한 소리를 했다. 그가 수원에서 2, 3십명 모아놓고 했다는 "강의" 내용을 정확히는 알수 없지만, 언론 보도 내용을 종합해 보면, 그는 1950년 10월 중공군이 한국전쟁에 개입한 것은 자국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였다는 주장인 것 같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중국이 한국전쟁에 대해서 처음부터 중립을 지니고 있었다면 강정구씨의 정당방위론이 조금은 먹혀들어갈 여지가 있지만, 실제로 중국은 김일성의 남침 계획에 동의하고, 중공군으로 복무하고 있던 조선인들을 북한으로 보내 김일성 군대의 3개 사단을 만들게 도와주었다.

 

   쉽게 비유를 하자면, 김일성이라는 조폭이 이승만이라는 조폭을 남한이라는 지역에서 몰아내려 하니까 김을 응원하고 똘만이들도  몇명  보내준 것이 마오쩌둥이라는 "형님" 조폭이다. 그런데 김일성이 오히려 이승만과 그의 "형님"인 미국한테 얻어터지니까 마오쩌둥이 직접 그 싸움에 끼어든 격인데, 이런 마오쩌둥의 행동을 정당방위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은가? 
         
   강씨는 그 동안 6.25전쟁이 김일성의 한반도 통일 노력이므로 비난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을 펴왔다. 그러나 그는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소련과 중국의 승락과 군사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1989년 옛 소련이 붕괴된 이후 비밀 해제된 비밀 문서들에 의하면, 김일성은 1949년 3월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소련 수상 스탈린에게 남침계획을 털어놓고 지원을 요청한다. 스탈린은 한반도 무력통일 원칙에는 찬성하나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말한다. 3월 17일 김일성은 스탈린을 다시 만나 재차 남침 지원을 요청하지만 스탈린은 여전히 시기상조론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그는 김이 평양으로 돌아간 3개월 후 김이 요청한 군사원조는 승인한다.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모택동)이 이끄는 공산당이 중국을 통일하자 김일성의 남침 의욕은 더욱 강렬해졌다. 그는 1950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남조선의 이승만 괴뢰정권"(남북한은 서로 괴뢰―허수아비―정권이라고 불렀다)을 타도하고 민족 통일을 달성할 때가 되었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평양주재 소련대사를 통해 스탈린에게 남침계획 승인을 계속 조른다. 

 

   그런 때에 마침 딘 애치슨 미국 국무장관이 한국은 미국의 동아시아 방위선 안에 들어있지 않다는 발언을 한다. (애치슨의 이 발언은 북한의 남침을 유도하기 위한 술책이었다는 주장도 후에 나왔다). 어쨌든  김일성은 애치슨 선언을 철석같이 믿었던 것 같다. 그는 스탈린에게 끈질기에 남침 승인을 졸랐고, 스탈린은 여전히 신중론을 폈다. 그러나 김을 진정시키기 위해 인민군 보병 3개 사단 증설을 허가하고 무기와 군사물자를 차관형식으로 보내주었다.

 

   1950년 4월 하순, 그러니까 전쟁이 나기 불과 2개월 전, 김일성은 비밀리에 모스크바로 가서 다시 스탈린을 직접 만나 남침계획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승인을 또 요청했다. 같이 따라간 남한 출신 부수상 겸 외무상 박헌영은 전쟁이 시작되면 남로당 20만 당원이 봉기할 것이므로 전쟁은 금방 끝날 것이라고 거들었다 한다. (일부 학자들은 이것은 사실이 아니며, 김일성이 전쟁 후 박헌영을 숙청하기 위해 박헌영의 남로당 봉기 발언을 조작했다고 주장한다.)

 
김일성의 속전속결 남침 계획에 결국 스탈린도 설득되어 김일성의 남침계획을 승인한다. 단, 중국의 마오쩌둥도 동의를 해야만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김일성은 5월 13일 베이징으로 가서 마오쩌둥의 동의를 받아낸다. 중국은 이미 1949년부터 1950년 4월 사이에 중공군 소속 조선인들을 북한으로 귀국시켜 북한 인민군 제5, 제6, 제7사단을 만들게 도와주었다.   (인민군 전체 병력 13만여명 중 약 30%가 이들 중공군 출신 조선인들이었다.)

 

   이와 같이 김일성이 아이디어를 내고, 소련과 중국의 승낙과 지원을 받고 일으킨 전쟁이 6.25전쟁이다. 그러나 미국이 의외로 신속히 참전하고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는 바람에 김일성 군대는 대구 근처까지 내려갔다가 후퇴에 후퇴를 거듭, 남한군대와 유엔군은 1950년 10월 하순 압록강까지 쳐들어 올라간다. 김일성 주도하의 통일 대신 유엔군과 한국군 주도하의 통일이 실현될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자 전쟁 전부터 김일성을 물심 양면으로 지원했던 중국은 한반도가 자본주의 국가로 통일되어 자기네와 국경을 맞대게 되는 상황을 그냥 보고만 있을수 없었다. (공산화 통일을 한지 겨우 1년밖에 안된 중국에는 아직도 자본주의 잔재세력이 상당히 남아있어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래서 마오쩌둥은 10월 하순 중공군 30만명을 한반도에 몰아넣었던 것이다. 

   중국의 관점에서 보면 방어전쟁이라고 할수 있겠지만, 침략을 먼저 당한 우리들 입장에서는 보가(保家)니 방어(防禦)니 하는 말이 가당치 않다. 김일성의 남침과 중공군 개입을 변호하는 강정구씨의 발언이 학자의 가치중립적 강의가 아니라 공산주의 선전 선동같이 들리는 것은 비단 필자 뿐만이 아닐 것이다.  

 

현충일에 워싱턴에서 


조 화 유

조화유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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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7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공군들을 위해 위문공연을 하는 ...
답변1개
조화유 77 636 2008-03-24
      중공군은 개전 10일만에 참전을 결정했답니다. 깽정구사살 78 411 2008-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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